후쿠시마대학 교수인 사카모토라고 합니다. 국제회의 참가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환영의 인사를 말씀드립니다. 오늘 이 세션에서 도입 발언을 하신 여러 피폭자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폭 피해가 얼마나 말로 다하기 어려운 고통이며, 지금까지 74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피해자들이 어떤 피해와 차별을 받아 왔는지, 핵무기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비인간적 것이라는 점 등을 다시 인식했습니다. 핵무기의 존재와 그 사용은 어떤 이유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의 생존과 핵무기는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일본은 어떻게 국제 분쟁 속에서 무력을 행사하는 일 없이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나라를 만들 것인지, 어떻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처럼 시민의 생명과 건강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을 때에 시민을 지키는 나라를 만들어낼 것인지, 결정짓는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도쿄전력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부터 8년 4개월 22일이 지났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이 위치하고 있어 귀환곤란구역(歸還困難地域)이었던 후쿠시마현 후타바군 오쿠마마치에서 벌써 일부 피난 조치가 해제되었습니다. 인근의 후타바마치도 조만간 해제될 것 같습니다. 이들 지역은 방사선량이 여전히 매우 높은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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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조사에서도 이 두 지역 주민들의 답변은 “(원거주지로) 돌아가겠다”가 약 10%에 그쳤고, “판단이 어렵다”가 20%, “돌아가지 않겠다”가 70%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미 피난 조치가 해제된 지자체에서는 초중등학교가 수업을 재개했으나, 사고 전 수백 명의 학생이 있던 학교에 현재 다니는 학생의 수는 한 자리 수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재개해도 신규 입학자가 하나도 없어 다시 폐쇄하는 사태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아동 수의 감소로 인해 재해지 지자체는 존폐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현 당국은 “(원거주지로) 귀환하는 것이 곧 (지역)부흥”이라고 하면서 귀환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피난 지시를 해제한 지역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개인이 책임져야 할 판단이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모두 ‘자발적 피난’”이라며 피난자의 수 파악조차 제대로 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피난민의 피난처 주거비 지원을 잇달아 중단하며, 피난처의 공영 주택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에게 2배~6배의 비용을 청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생업과 수입을 잃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가운데 8년이 지나 정신적·경제적으로 내몰리고 있는 피난민들에게, 공공 교통시설·슈퍼마켓·의료기관·간병시설 등이 충분히 복구되지 않은 지역으로 돌아가라는 정책은 비인도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 중 방사선량이나 토양에 함유된 방사능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합니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는 토양 오염의 통계 조사를 실시하지도 공표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핵발전소 사고를 낸 도쿄 전력이, 배상 제도의 근간인 대체적 분쟁해결(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법원 소송 이외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분쟁해결방식.)에 따른 피해자와의 화해를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시민의 생명의 고귀함을 내버린 일본 정부는 국제적으로 지탄받아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피난처와 원래의 거주지 양자의 이중주민등록을 인정하는 정책입니다. 이를 통해 어디에 거주하고 있어도 시민에게 경제적으로 안정적 지원을 제공하여 존엄성 있는 삶을 보장해야 합니다. 후쿠시마에서는 이러한 정책을 나라에 요구하며 핵발전소 사고 피해자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싸움에 전국적 지지를 보내주십시오. 여러분의 지지에 힘입어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한편 2017년 7월, 세계는 시민이 주도하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바로 2017년 7월 7일 뉴욕에서 채택된 ‘핵무기금지조약’입니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이 조약 체결을 성사시킨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반핵 운동에 오랫동안 헌신해 온 세계 시민의 운동입니다. 원폭 투하 경험 국가로서 일본이 핵무기금지조약에 동참하는 것은 세계의 흐름을 크게 바꿀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핵무기금지조약을 한시라도 빨리 비준해야 합니다.
또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2018년 4월 남북 대화가 성사된 이후 4차례 남북 대화가 있었고,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북미 정상의 직접 대화도 트럼프 미 대통령의 판문점 전격 방문까지 3차례에 이르렀습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미국 항공모함 3척의 일본 배치 등을 겪으며 최고조로 높아지고 있던 긴장은 평화 대화 국면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과 러시아도 여기에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는 한국의 문재인 정권은 시민들의 ‘촛불혁명’ 이후 탄생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대화를 낳고 지탱하고 있는 것은 평화공존·핵무기 폐기를 바라는 각국의 광범위한 시민운동임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앉음으로써 일본 정부에 있어서 최대의 가상(假想) 적국이 사라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한국이 반도체 기술을 북한에 유출시키고 있다고 하는 미확인 정보를 선전하며,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을 구실로 한국과 중국을 가상 적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일본이 미국이 주도하는 중동과 호르무즈해협 개입 연합에 참가할 가능성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아베 극우 정권이 노리는 것은 전 세계에서 전투와 무력행사가 가능한 나라로 일본을 만드는 것입니다. 미국 주도 연합군이 중동 지역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7월 말 참의원 선거에서, 평화헌법 개헌을 주장하는 세력(여당)은 의석을 잃어, 불과 4석 차이로 헌법 개정 발의를 실시하기 위해서 필요한 의석 2/3 선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아베 극우 정권의 헌법 개정 야망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과 야당의 공동투쟁의 결과이며, 일본 정치는 본격적인 야당 공동투쟁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임기 중에 개헌 발의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피폭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두 번 다시 세상에서 그 누구도 핵무기의 참화를 겪게 하지 말자! 핵이 없는 새로운 세계를 위해 후쿠시마에서도 온 힘을 다하겠다는 결의로 발표를 마무리하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수십 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킨 지 74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후 펼쳐진, 전 세계적인 핵 개발 경쟁의 신호탄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정치가들은 핵을 정치적 위협의 수단으로 삼아왔습니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공식 핵보유국 5개국)이 자국의 핵 프로그램에 지출해 온 돈을 합치면 대략 10조 달러 가량입니다. 이는 세계 다른 나라들의 수십 년 간의 예산을 합친 것에 필적합니다. 정치가들은 핵무기 개발·실험은 자국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핵무기 개발과 실험의 희생자가 된 것은 바로 그 시민들입니다! 현재 이러한 핵실험 피해자들의 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희생자들의 수에 육박할 만큼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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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도 그러한 사례입니다. 핵무기용 플루토늄은 1940년대 중반 소련에서 최초로 생산되었습니다. 우랄 지방의 비밀 핵 도시, 첼랴빈스크-40의 마야크(Mayak) 핵 생산 시설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역주: 첼랴빈스크-40은 오늘날의 오조르스크 시다. 소련 핵무기 프로그램의 탄생지, 마야크 핵 시설을 위해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설립된 도시다. 그 존재 자체가 비밀로 붙여지고 주민의 유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폐쇄 도시였다. 현재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능가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심하게 피폭된 지역 중 하나로 추정되어 ‘지구의 무덤’으로 불린다. 그러나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마야크 시설의 핵무기용 플루토늄 생산은 1987년 중단되었으나, 여전히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공장으로 가동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주위 주민의 건강과 생활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극비리에 진행되었습니다. 방사성 액체 폐기물이 데차 강에 버려졌지만, 이 사실은 지역 주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조상들이 수 천 년 동안 해온 것처럼, 소련 주민들과 가축들은 피폭 당한 강물을 마시고, 강에서 수영하고 낚시를 했습니다. 치명적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들이 사실상 소련 핵무기의 첫 희생자였습니다. 비밀 핵 시설에서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고 방사능 물질이 대기와 강으로 유출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정보는 국가 기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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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사고는 1957년 9월 29일에 있었습니다. [역주: 키시팀 사고(Kyshtym disaster)를 가리킨다. 사고가 일어난 첼랴빈스크-40이 당시 비밀 도시였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도시인 키시팀의 이름을 빌렸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의 뒤를 이은, 역사상 3번째 수준의 핵 관련 사고로 추정되나 소련 정부의 은폐로 냉전 종식 이후에야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마야크 플루토늄 생산 시설에서 액체 고준위 폐기물 저장 탱크가 폭발하여, 2천만 퀴리(방사성 핵종의 방사능을 나타내는 특수 단위. 기호는 Ci.)의 방사능이 대기에 퍼졌습니다. 그 결과 2만 제곱킬로미터 이상이 오염되었습니다. 군인들과 어린 학생들이 사고로 인한 오염 수습에 투입되었습니다. 안전 기준이 준수되지 않아, 그들 중 상당수가 생명에 치명적인 수준으로 피폭되었습니다. 이 사고 이후 약 250개의 거주지가 이전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등록된 민간인 수만 50만 명 이상이며 이는 사고 수습에 투입된 군인들을 포함하지 않은 수입니다. 소련 시민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핵무기로 인해 우랄 지역의 소련 시민들이 수천 명 이상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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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가 처음 개발된 이래 수많은 핵 실험이 있었습니다. 소련은 비행기로 소련 영토 안에 40킬로톤(핵폭탄의 위력을 나타낼 때 쓰는 에너지의 단위. 참고로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위력은 13킬로톤 정도였다.)의 핵폭탄을 투하하는 핵 실험을 1954년 9월 14일 시행했습니다. 4만 5천 여 명의 군인과 만 여 명의 지역 주민이 이 실험에 피폭 당했습니다. 피폭으로 인한 건강 문제는 이들의 자식 세대에까지 이어졌습니다.
소련에서는 핵무기의 개발과 생산을 위해 10개의 비밀 핵 도시를 비롯한 인프라 투자들이 막대하게 이뤄졌습니다. 이후, 군사적 핵 프로그램에 들어간 엄청난 비용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부 당국은 10개의 ‘민간 핵 도시’를 추가로 건설하고 그곳들에 핵발전소를 배치했습니다. 이에 따라 오로지 핵 관련 산업 밖에 존재하지 않는 20개의 도시에 150만 명이 살게 되었습니다. 이는 전체 인구의 1%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국가 엘리트로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려 애썼습니다. 냉전이 종식된 뒤, 이들은 해외에 핵 관련 인프라를 건설하고 핵 기술을 수출하기 위한 로비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는 얼핏 보면 긍정적인 기술 협력으로, 군사적 대결의 대안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핀란드를 포함해 유럽·아시아·아프리카 각지에 지어졌거나 건설 계획 중인 핵발전소에 들어가는 러시아 VVER-1200 원자로는, 러시아 핵 잠수함과 핵발전소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재처리한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러시아가 설계한 핵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자동으로 러시아 군사프로그램에 투자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내막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또한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는 방사성 액체 폐기물을 발생시킵니다. 이 방사성 액체 폐기물(연간 최대 2백만 세제곱미터)은 자연으로 배출되어 강과 함께 북극해와 북유럽으로 이동합니다. 그래서 북유럽의 다음 세대 주민들은 식탁에서 생선과 해산물의 형태로 방사성 물질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에 살고 있지만, 핵무기의 잠재적인 새 희생자들입니다.
친애하는 동료 여러분, 핵 기술은 절대 ‘위험하고 군사적인 용도’와 ‘안전하고 평화적인 용도’로 나눠질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저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직후에 방사능 오염 지역을 방문한 연구팀의 일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후쿠시마에 버금가는 참극이었습니다. 일본과 러시아에는 수십만 명의 핵 피해자들이 있습니다. 이제 더는 새로운 희생자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핵무기와 핵발전소가 없는 평화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성사되도록 애쓰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영국 핵군축캠페인(CND; Campaign for Nuclear Disarmament)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CND는 작년에 60주년을 맞았습니다. CND는 1958년 창립한 이래로 수십 년 간 핵무기에 대한 대중적 저항 행동을 다양하게 조직해 온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국내외의 다양한 사회운동과 협력하면서, 우리는 영국과 세계의 정부들이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PTBT; Partial Test Ban Treaty), 핵확산방지조약(NPT;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과 같은 중대한 합의에 이르게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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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영국 정부는 트라이던트(Trident) 미사일 시스템(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과 핵탄두, 핵잠수함)의 현대화 계획을 통과시켰습니다. 핵무기 반대 운동가이자 CND 부의장을 역임하기도 한 제러미 코빈이 당 대표를 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1야당인 영국 노동당은 이 트라이던트 현대화에 찬성하는 당론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핵무기금지조약(TPNW) 채택을 위한 협상을 보이콧하면서, 이 조약에 반대하기 위해 미국이 조직한 기자회견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묵과할 수 없습니다. CND는 이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높이면서, 영국 정부와 모든 정당이 핵무기에 대해 입장을 새로, 제대로 정립할 때까지, 즉 일방적 군축 정책으로 선회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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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D는 다양한 지역별 모임으로 구성된 풀뿌리 운동입니다. 그 중에는 특정 분야를 대표하는 모임도 있습니다. 한 예가 CND 기독교도 모임입니다. 이들은 최근에 개빈 윌리엄슨 전 국방장관이 기획한,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행사를 규탄하는 행동을 조직했습니다. 그 행사는 영국의 핵무기 시스템 보유 50주년을 기념하는, 국가 차원의 추수감사절 행사였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종교 장소 중 하나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열렸고, 윌리엄 왕자(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손자)가 여기에 참석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는 무기의 도입을 ‘축하’했습니다. CND 기독교도 모임의 주도로, 수백 명이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고 죽은 사람처럼 길 위에 드러누웠습니다(‘die-in’ protest. 참가자들이 죽은 것처럼 시뮬레이션하는 항의 형태를 말한다). 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희생자들을 기리는 행동이었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이 날의 광경을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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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9월)에 영국에서 열리는 DSEI(Defence and Security Equipment International은 영국 국방부와 국제통상부, 국방보안기구, 항공방위보안협회의 후원으로 격년 개최되는 영국 최대 규모의 무기 박람회다)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무기 박람회 중 하나입니다. DSEI에는 1600개 이상의 무기 생산업체가 참가하여 저격용 무기에서 탱크까지, 온갖 범위의 무기를 전시합니다. 이들은 심각한 인권 유린을 벌여온 나라들에 무기를 판매합니다. 이 박람회에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정권들의 대표들이 초대받았습니다. 또한 전기 충격기, 고문 장비, 집속탄(cluster bombs. 한 개의 폭탄 속에 또 다른 폭탄이 들어가 있는 폭탄을 말하며, 넓은 지형에서 다수의 인명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대표적 비인도적 무기)과 같이, 그 극악무도함 때문에 영국 국내에서 판매가 금지된 무기들이 DSEI에서 판매된 전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위법 행위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는 DSEI를 계속 후원하고 있습니다.
CND는 무기거래반대캠페인(CAAT; Campaign Against Arms Trade. 국제 무기 거래의 폐지를 목표로 하는 영국 기반의 캠페인 조직. 1974년에 여러 평화운동 단체들의 연대체로 시작했다.)을 비롯하여 여러 단체들과 함께, 올해 9월 4일에 ‘반핵의 날’(No Nuclear Day) 집회를 공동 주최할 것입니다. 이는 DSEI에 맞서 2주간 이어지는 ‘무기 박람회 저지 행동 주간’의 일환입니다.
12월에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29개 회원 국가로 구성된 집단적 군사동맹 기구. 1949년 냉전 체제 하에서 소련 및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응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회원국 수장들이 런던에 모일 예정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참석할 것입니다. NATO 정상회의는 트럼프가 추구하는 핵 전쟁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핵 동맹으로서 NATO’의 기능이 강화되는 것은 국제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CND는 영국 및 국제 평화운동과 협력하여 런던에서 NATO 정상회의에 대응하는 시위를 조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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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시위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시민행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1958년 첫 CND 모임에는 무려 5000명이 참가했지만, 현재 모임에서 제 또래 청년들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고, 냉전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세대에게 핵전쟁의 위협은 요원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핵 전쟁 준비 태세와 이란과의 관계 악화, 그리고 핵무기는 영국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신임 총리(보수당의 보리스 존슨)의 태도는 점점 더 깊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우리는 청년들이 역사를 공부하고 평화 운동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시위가 마치 매주 으레 열리는 행사처럼 여겨지고, CND 로고(평화 기호. Peace symbol)가 패션 브랜드에 의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핵전쟁의 위협은 지나간 시대의 문제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할 일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는 청년들의 에너지를 모아내야 하고, 베테랑 활동가들의 전략적 통찰력, 지식, 경험을 그들에게 전수하여 이를 새 세대의 역량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융통성 있는 접근 방식을 마련하고, 차이를 긍정하며, 서로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CND 런던 지부는 청년 조직화라는 과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우리 조직의 구조를 단순화하고, 디지털 활용 기술을 가진 회원을 모집하며, 창조적인 워크숍과 대규모 캠페인을 통해 우리의 행사에 새로운 이들을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더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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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저는 잉글랜드 북부의 한 마을, 배로우-인-퍼네스를 방문했습니다. 바로 영국의 핵 미사일이 장착되는 뱅가드급(Vanguard class) 잠수함이 생산되는 곳입니다. 현재 세계 4위 군수기업인 BAE 시스템스는 이 지역의 주요한 고용주이고, 사실상 이 마을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을 곳곳의 공공서비스에서 BAE Systems 로고를 발견할 때마다 소름이 끼쳤습니다. 영국 정부가 학교 시스템을 바꿔버려, 기업들은 이제 단순히 학교에 자금 ‘후원’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업 교재까지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제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군수기업이 후원하는 학교에서, 11세 어린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중 무기를 디자인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들의 목록 써오기’ 같은 교재로 수업 받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전쟁과 무기는 정상적인 것이고, 사회에서 용인되는 요소이며, 일자리를 창출하고, 우리는 어떠한 충돌에도 군사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고 배우게 됩니다. 현 시스템에서 이런 식의 교육은 크게 문제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군사주의적 편견을 유포하는 교육에 반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끝없는 전쟁에 대한 대안을 제공해야 하고, 청소년들이 다양한 정보와 관점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자주 학교 학생들, 청소년들과 함께 일하는데, 그러면서 이들과의 대화가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영향력을 느낍니다. CND의 교육 프로그램에는 해마다 영국 전역의 수 천 명의 학생들이 참여합니다. 우리의 평화교육 담당자들과 자원활동가들은 학교를 찾아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교사들을 위한 교육을 하기도 하고, 모든 연령이 사용할 수 있는 교실 교육활동 패키지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핵무기와 평화 문제에 대한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이 이러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합니다.
교육에 들인 노력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가족 전체가 이러한 토론에 참여하고 동의지반을 공유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핵무기 철폐가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부모들에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상황에서 트라이던트 반대와 같이 평화를 위한 투쟁과, 군수기업의 업종 전환을 통한 일자리 유지 둘 다를 요구할 수 있는 조직입니다. 2017년, 영국노총(Trade Union Congress)은 노동당에 국가 산업 전략의 차원에서 군수사업의 업종 전환 문제를 다루는 기관을 설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트라이던트를 폐기해야 하는 근거는 분명합니다. 자녀 세대가 핵 전쟁으로 절멸할 위험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무기 현대화에 들어갈 2050억 파운드를 아껴 이 예산을 모두를 위한 교육 및 보건의료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연히 부모들에게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가 단결해야 하는 필요성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각자 지닌 기술을 활용하여 운동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민행동이란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는 눈에 보이는 작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런던 거리에서는 이미 매주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투쟁 방법의 효과에 대해 점점 회의적이 되고 있습니다. 가시적인 대규모 행동을 조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뿌리와 가지를 사회 곳곳에 널리 퍼뜨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즉 정보를 공유하고 동료, 학생, 부모, 정치인들과 함께 우리의 견해를 토론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집회를 진행하거나, 뉴스레터를 공유하거나, 전단지를 디자인하거나, 신문에 글을 쓰거나, 학교에서 연설을 하거나, 웹사이트를 만들거나, 지역 선전전을 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평화운동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집단적 힘을 조화롭게 하나로 묶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운동은 성장하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도달하며, 더 큰 대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함께 하면, 우리는 성공할 것입니다.